우리는 기후변화가 먹거리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할 때 주로 폭염, 가뭄, 집중호우를 떠올립니다. 사과의 재배지가 북쪽으로 움직이고, 배추가 더위에 약해지고, 바닷물이 따뜻해져 어종이 달라지는 변화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식탁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바로 ‘꽃가루받이’, 즉 수분입니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열매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과일과 채소는 벌과 나비 같은 수분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줘야 정상적인 열매와 씨앗을 만들 수 있습니다.

FAO는 전 세계 주요 식량작물 유형의 약 75%가 동물에 의한 수분에 적어도 일부 의존한다고 설명합니다. 수분곤충은 단순히 작물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과일과 채소의 모양과 크기, 품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식물과 곤충의 달력을 동시에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꽃이 평년보다 일찍 피었는데 벌의 활동 시기가 같은 속도로 앞당겨지지 않는다면, 꽃과 벌이 서로 만나야 할 짧은 시간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1. 수분은 왜 필요한가 — 꽃에서 열매가 되기까지

꽃은 암술과 수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술에서 만들어진 꽃가루가 암술에 도달해야 수정이 이루어지고, 그 뒤 열매와 씨앗이 만들어집니다.

바람이 꽃가루를 옮겨주는 작물도 있고 스스로 수정하는 작물도 있지만, 많은 과수와 채소는 곤충의 도움이 중요합니다. 벌이 꽃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으는 동안 몸에 묻은 꽃가루가 다른 꽃으로 옮겨지면서 자연스럽게 수분이 이루어집니다.

FAO에 따르면 수분곤충은 전 세계 작물 생산량의 약 35%에 영향을 주며, 주요 식량작물 115종 가운데 87종의 수확량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특히 과일, 채소, 견과류, 씨앗처럼 식단의 다양성과 영양에 중요한 작물에서 역할이 큽니다.

그래서 벌의 감소는 ‘꿀을 덜 생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먹는 식품의 종류와 품질, 생산비까지 연결되는 농업 문제입니다.

2. 한국에서도 벌은 이미 ‘농업 생산설비’에 가깝다

국내 시설재배 농가에서는 꽃가루받이를 자연에만 맡기지 않습니다. 딸기와 수박 같은 작물에는 일정한 시기에 꿀벌이나 뒤영벌이 들어 있는 벌통을 온실에 배치합니다.

농촌진흥청은 겨울철 딸기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꽃이 피기 전 화분매개용 벌을 준비하고, 벌의 상태와 시설 내부 온도, 먹이, 응애 같은 해충까지 관리할 것을 별도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특히 딸기는 벌이 충분히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하면 모양이 고르지 않은 과실이 생길 수 있어 상품성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농촌진흥청은 딸기 시설에서 꿀벌 부족이 발생했을 때 뒤영벌을 대체 수분곤충으로 활용하는 기술도 보급해 왔습니다.

즉 현대 농업에서 벌은 단순한 자연의 손님이 아니라 생산량과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농업자원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꽃가루가 수술에서 암술로 이동해 수정과 열매 형성으로 이어지는 과정
벌이 꽃가루를 옮기면 수정이 이루어지고, 이후 씨앗과 열매가 발달합니다.

3. 기후변화가 만드는 가장 미묘한 문제 — ‘꽃과 벌의 시간표’가 어긋난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시기와 벌이 겨울잠이나 휴면에서 깨어나는 시기는 기온과 일조량, 강수량 같은 환경신호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온이 빨리 올라가면 일부 식물은 평년보다 일찍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벌과 수분곤충이 꽃과 똑같은 속도로 활동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아닙니다.

USDA Climate Hubs는 기후변화로 꽃이 일찍 피는 반면 수분곤충의 출현 시기가 그 변화와 맞지 않을 경우 식물과 곤충 사이의 ‘계절적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식당은 문을 열었는데 손님이 아직 오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 짧은 시기에 수분곤충이 충분히 활동하지 못하면 수정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4. 폭염과 가뭄은 벌에게도 영향을 준다

높은 기온은 식물과 곤충 양쪽에 영향을 줍니다. 폭염이 심하면 일부 수분곤충은 활동시간을 줄이거나 더 시원한 장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가뭄이 지속되면 꽃 자체가 줄어들 수 있고, 꽃에서 만들어지는 꿀의 양도 감소할 수 있습니다. USDA는 따뜻하고 건조한 조건에서 식물이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꿀 생산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꽃이 줄면 벌의 먹이가 줄고, 벌의 활동이 줄면 다시 식물의 수분 기회도 감소합니다. 식물과 곤충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입니다.

반대로 강한 비가 자주 오는 것도 문제입니다. 많은 벌과 곤충은 비가 내리는 동안 활발하게 날지 않습니다. 개화기간에 비가 집중되면 꽃은 피어 있지만 실제 수분이 가능한 시간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겹치는 개화시기와 벌 활동시기 및 기후변화로 어긋난 시간표
꽃이 일찍 피어도 벌의 활동시기가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으면 실제 수분이 가능한 기간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5. 꿀벌만 지키면 해결될까 — 야생벌의 역할

수분곤충이라고 하면 대부분 꿀벌을 떠올리지만 실제 자연에는 뒤영벌과 다양한 야생벌, 나비, 나방, 딱정벌레 등 수많은 수분자가 있습니다.

FAO는 수분 생물의 다양성이 농업생태계의 회복력을 높이는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날씨가 춥거나 흐릴 때 잘 활동하는 종과 따뜻한 날씨에 강한 종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종류의 벌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질병이나 기상이변이 발생했을 때 수분서비스 전체가 흔들릴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농업에서는 꿀벌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뿐 아니라 농경지 주변의 야생화와 숲, 둔덕 같은 서식공간을 보전해 다양한 수분곤충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6. 벌이 줄면 가격은 어떻게 달라질까

수분이 부족하다고 해서 다음 날 바로 과일값이 폭등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산물 가격은 생산량, 재배면적, 수입, 저장물량, 소비수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지만 수분이 충분하지 않으면 같은 면적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과 비율이 낮아지거나 인공수분과 화분매개용 벌 구입에 드는 비용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FAO는 수분곤충이 없다면 현재 세계 작물 생산량의 약 5~8%가 사라질 수 있으며, 그 경제적 가치를 연간 2,350억~5,770억 달러 규모로 추정한 연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쌀과 밀처럼 주식 전체가 벌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바로 굶는다’는 표현은 과장입니다. 더 정확한 문제는 과일과 채소, 견과류처럼 영양과 식단 다양성에 중요한 식품의 생산과 가격이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딸기·수박·사과 등 먹거리와 꿀벌·뒤영벌·야생벌의 연결
딸기·수박·사과·견과류처럼 친숙한 먹거리는 다양한 수분곤충의 도움을 받지만 품목별 의존도는 서로 다릅니다.

7. 농업은 어떻게 적응하고 있나

첫 번째는 건강한 화분매개용 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딸기와 수박 등 시설재배에 맞는 벌통 규격과 투입시기, 온도관리 기술이 개발돼 있습니다.

두 번째는 꿀벌 한 종류만이 아니라 뒤영벌과 야생벌 등 다양한 수분자를 활용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농약 사용시기와 방식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꽃이 피고 벌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에 수분곤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제를 잘못 사용하면 수분서비스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농경지 주변의 꽃과 서식공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작물이 꽃피는 짧은 기간 외에도 벌이 먹이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수분곤충의 개체군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개화예측과 기상정보, 벌의 활동상태를 함께 분석하는 정밀농업 기술도 중요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8. 기후가 바꾸는 식탁을 볼 때 ‘벌’을 봐야 하는 이유

기후변화와 먹거리의 관계는 온도와 강수량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농작물은 토양과 물뿐 아니라 주변의 곤충과 미생물, 생태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과가 꽃을 일찍 피우고, 딸기가 온실에서 겨울에 꽃을 피우더라도 그 시기에 꽃가루를 옮겨줄 생물이 충분하지 않다면 생산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분곤충 문제는 생태보전과 농업생산을 따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후변화 시대의 식량안보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뿐 아니라 ‘그 작물이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생태계까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함께 묻는 문제입니다.

기후와 개화·수분곤충·수정·생산량·품질·식탁의 전체 연결 구조
기후는 개화와 곤충 활동에 영향을 주고, 수분의 결과는 농산물의 생산량·품질과 식탁의 다양성으로 이어집니다.

마무리 — 식탁을 만드는 것은 농부와 날씨만이 아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딸기 한 팩과 사과 한 봉지 뒤에는 농부의 노동과 햇빛, 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꽃과 꽃 사이를 오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수분곤충도 생산과정의 일부입니다.

기후변화가 꽃의 개화시기와 벌의 활동시기를 서로 다르게 움직이고, 폭염과 가뭄이 꽃과 벌 모두에게 부담을 준다면 농업은 이전보다 더 세밀하게 생태계의 시간을 관리해야 합니다.

벌이 사라진다고 모든 식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즐기는 과일과 채소, 견과류 등 식단의 다양성과 품질에는 분명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후가 바꾼 식탁을 이해하려면 이제 밭의 온도뿐 아니라 꽃 주변을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까지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75%와 35%는 무엇이 다른가

약 75%는 세계 식량작물의 종류 가운데 동물 수분에 적어도 일부 의존하는 작물의 비율이고, 약 35%는 동물 수분의 영향을 받는 세계 작물 생산량의 비중입니다. 따라서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의 75%가 그대로 사라진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영향은 작물마다 다르며 야생벌과 파리, 나비 등 다양한 수분곤충도 함께 역할을 합니다.

참고자료

「꽃은 피었는데 열매가 없다? — 기후변화가 꿀벌과 식탁을 연결하는 방식」의 핵심 내용은 아래 원문·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