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가격표〉 ②

물가가 오르면 우리는 보통 금리, 환율, 유가, 임금부터 떠올립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한 가지 변수를 더 자주 보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날씨와 기후입니다.

폭염이 농작물의 수확량을 낮추고, 가뭄이 물류와 발전을 흔들며, 홍수가 공장과 도로를 멈추면 그 비용은 결국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후충격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흔히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가장 먼저 체감되는 곳은 식료품 가격입니다.

왜 식품가격이 가장 먼저 반응할까

농산물은 공장에서 버튼을 눌러 생산량을 즉시 늘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자라고 수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 전체가 기온과 비, 일조량의 영향을 받습니다.

폭염이나 가뭄이 한 지역의 생산량을 떨어뜨리면 다른 지역에서 공급을 늘리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저장성이 낮은 채소와 과일은 충격이 가격에 더 빠르게 반영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후충격은 식품 공급을 직접 흔들 수 있고, 소비자는 이를 장바구니에서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됩니다.

폭염·가뭄·홍수가 생산량과 물류, 에너지비용을 거쳐 생활물가에 영향을 주는 구조도
기후충격은 생산량, 물류, 에너지비용의 여러 경로를 거쳐 생활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연구에서도 온도와 식품물가의 연결이 관찰된다

유럽중앙은행(ECB) 연구진이 참여한 연구에서는 높은 기온이 식품물가에 상승 압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제시됐습니다.

연구진은 2035년의 기후조건 아래에서 전 세계 식품 인플레이션에 연간 0.92~3.23%포인트의 추가 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다만 이는 미래 물가 자체를 예측한 수치가 아닙니다. 전례 없는 적응이나 별도의 정책 대응이 없고 다른 거시경제 여건이 일정하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외생적 압력의 범위입니다.

중요한 점은 기후가 물가의 ‘새로운 단독 원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기존의 에너지, 임금, 환율, 공급망 변수에 기후충격이 추가된다는 것입니다.

폭염 하나가 여러 가격을 동시에 건드린다

폭염은 농작물 생산만 흔드는 것이 아닙니다. 가축의 생산성을 낮출 수 있고 냉방 전력수요를 늘리며, 냉장·냉동 물류의 에너지 비용도 높일 수 있습니다.

건설과 야외작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공사기간과 인건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전력망이 피크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설비투자를 해야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에너지비용 구조에도 영향을 줍니다.

즉 하나의 기후현상이 식품, 에너지, 물류, 노동생산성을 동시에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이 기후플레이션의 특징입니다.

과일·채소·육류가 든 장바구니와 전기요금 고지서
기후의 가격표는 식품과 에너지처럼 매일 마주하는 필수 지출에서 먼저 체감될 수 있습니다.

물가충격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식품과 에너지는 생활에 꼭 필요한 지출입니다. 소득이 낮을수록 전체 소비에서 이런 필수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5%의 식품가격 상승이라도 가계가 느끼는 부담은 다를 수 있습니다. 기후충격이 물가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는 논의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기후정책은 탄소배출만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취약계층의 에너지와 식품 접근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경제정책이기도 합니다.

중앙은행도 날씨를 봐야 하는 시대

중앙은행의 핵심 임무 가운데 하나는 물가안정입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식품과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을 높인다면 통화정책도 이 영향을 무시하기 어려워집니다.

문제는 금리를 올린다고 비가 더 내리거나 폭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급 측 충격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기후플레이션에 대응하려면 농업의 적응, 전력망 투자, 물류망 다변화, 보험, 식량비축 등 실물경제의 회복력을 높이는 정책이 함께 필요합니다.

마무리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지표에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날씨의 충격은 생산량과 생산비, 물류를 거쳐 가격표에도 도착합니다.

앞으로 물가가 크게 움직일 때는 유가와 환율뿐 아니라 주요 생산지역의 폭염, 가뭄, 홍수까지 함께 봐야 할 이유가 점점 커질 것입니다.

다음 〈기후의 가격표〉에서는 폭염과 재해가 근로시간과 생산성을 어떻게 바꾸는지, ‘기후와 노동생산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