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가격표〉 ①
집중호우로 공장이 침수됐습니다. 산불이 관광지를 덮쳤습니다. 폭염 때문에 야외작업이 중단됐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험이 있으니 피해를 보상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기후변화 시대에는 이 단순한 공식이 점점 흔들리고 있습니다. 피해가 너무 자주, 너무 넓게 발생하면 보험료가 올라갈 수 있고 위험이 지나치게 큰 지역에서는 보험 가입 조건이 까다로워질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후재해로 발생하는 전체 경제적 손실 가운데 보험으로 보상되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것입니다.
기후재해에는 가격표가 붙는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24년까지 EU에서 기상·기후 관련 극한현상으로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2024년 물가 기준 약 8,220억 유로로 추정됩니다.
특히 이 가운데 약 2,080억 유로, 즉 전체의 4분의 1가량이 2021~2024년 단 4년 동안 발생했습니다.
홍수와 폭풍, 폭염, 가뭄, 산불은 더 이상 자연현상만이 아닙니다. 도로를 망가뜨리고, 공장을 멈추고, 농작물을 훼손하고, 관광산업과 물류를 흔드는 경제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손실의 대부분이 보험으로 보상되는 것은 아니다
EEA 자료에서 1980~2024년 EU 전체 경제손실은 약 8,226억 유로, 보험으로 보상된 손실은 약 1,604억 유로였습니다. 단순 비율로 약 19.5%이며 국가별 차이도 매우 큽니다.
전체 손실과 보험으로 보상된 손실의 차이를 흔히 보험보호격차(insurance protection gap)라고 부릅니다.
재해가 발생했는데 보험으로 충분히 보상되지 않는다면 그 부담은 결국 개인, 기업 또는 정부가 떠안게 됩니다. 개인은 주택과 차량을 복구해야 하고, 기업은 생산시설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지방정부와 국가는 도로와 제방을 복구하고 피해 지원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즉, 보험의 빈자리는 결국 공공재정의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보험사는 왜 모든 위험을 보장하지 않을까
보험의 기본 원리는 위험을 예측하고 그 위험에 맞는 보험료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어려운 이유는 과거 데이터만으로 미래 위험을 계산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100년에 한 번 발생하던 수준의 사건이 앞으로도 정확히 100년에 한 번 발생한다고 가정할 수 없다면 보험사의 위험 계산도 달라져야 합니다.
위험이 커지면 보험료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자기부담금이 높아질 수도 있고, 특정 위험에 대한 보장 범위가 축소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민간보험만으로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폭염도 경제손실을 만든다
폭염은 태풍이나 홍수처럼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야외 근로자의 작업시간이 줄어들고, 공장의 냉방비가 증가하고, 전력수요가 폭증합니다. 운송, 건설, 농업, 관광 등 여러 산업의 생산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앞으로는 폭염을 기상뉴스가 아니라 경제뉴스로 읽어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후적응도 결국 투자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하나 나타납니다. 재해가 발생한 뒤 돈을 쓰는 것과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돈을 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도시의 배수시설을 확충하고, 해안 방재시설을 강화하며, 건물의 냉방효율을 높이고, 농업용수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모두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출은 단순한 환경예산이 아니라 미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기후적응 투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후산업에서는 탄소를 줄이는 ‘완화’뿐 아니라 이미 달라진 기후에 적응하는 적응산업도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무리
기후변화는 결국 비용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냉방비를 더 내고, 누군가는 농작물 피해를 입으며, 누군가는 보험료를 더 부담합니다. 정부는 방재시설과 복구비용을 부담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기후 뉴스를 볼 때 꼭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 변화의 비용은 얼마이고, 결국 누가 부담하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면 환경뉴스가 경제뉴스로 바뀝니다.
클라이밋 인사이트의 〈기후의 가격표〉에서는 앞으로 전기요금, 식량가격, 보험료, 물류비, 주택, 관광산업 등 기후변화가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가격표’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