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만든 산업〉 ③
기후변화 시대의 물 문제는 단순히 비가 적게 오는 가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비가 한꺼번에 집중되고 긴 건조기간이 반복되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공장과 데이터센터, 도시가 계속 성장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순간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능력은 하나의 산업 경쟁력이 됩니다. 그래서 최근 주목받는 분야가 하수와 공정수를 처리해 다시 사용하는 물 재이용입니다.
세계은행은 2025년 보고서에서 도시와 산업의 물 재이용이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며, 제도와 투자가 뒷받침될 경우 음용·산업용 재이용 규모가 2040년까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물도 한 번 쓰고 버리는 자원에서 순환자원으로 바뀐다
도시에서 사용한 생활하수와 산업공정에서 나온 물은 적절한 처리를 거치면 용도에 맞게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물을 마실 수 있는 수준까지 정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냉각수, 세척수, 조경용수, 공업용수처럼 목적에 맞는 수질로 처리하면 불필요한 처리단계와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fit-for-purpose’, 즉 용도에 맞는 물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물 재이용 산업은 정수기 한 대가 아니라 처리기술과 배관, 저장, 센서, 수질관리까지 포함하는 시스템 산업입니다.
왜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가 물에 관심을 가질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는 높은 수준의 순수가 필요하고, 발전소와 데이터센터는 냉각 과정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역의 물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공장은 생산계획 자체를 조정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물을 덜 쓰고 다시 쓰는 기술이 환경경영을 넘어 생산 안정성을 위한 설비가 됩니다.
특히 사용한 물이 발생하는 장소와 다시 필요한 장소가 가까운 산업단지나 도시에서는 재이용의 사업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세계은행은 설명합니다. 기후위험에 맞춰 산업 인프라를 다시 설계한다는 점은 기후위기와 전력망에서 살펴본 회복력 투자와도 연결됩니다.

세계은행이 ‘8배 성장 가능성’을 말한 이유
세계은행은 목표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규제, 투자가 갖춰질 경우 음용 및 산업용 물 재이용이 2040년 하루 4억3000만㎥ 규모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현재의 약 8배 수준입니다.
세계 도시와 산업에서는 매일 약 10억㎥의 사용된 물이 발생하지만 상당량이 충분히 처리·활용되지 않은 채 배출되고 있어, 이를 정화하고 재이용해 새로운 공급원으로 만들 여지가 크다고 분석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숫자가 자동으로 실현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규제, 가격체계, 투자, 주민 수용성, 운영능력이 함께 갖춰져야 가능한 조건부 전망입니다.

물 재이용 산업에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먼저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생물학적·화학적 처리기술이 필요합니다. 이후 용도에 따라 막여과, 역삼투압, 자외선·오존 소독 같은 고도처리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막의 오염을 줄이고 에너지 사용량을 낮추는 기술, 수질을 실시간 감시하는 센서와 자동제어도 중요합니다.
즉 물 재이용은 환경설비 기업뿐 아니라 멤브레인, 펌프, 센서, 자동화, 데이터 분석 기업까지 연결되는 산업입니다. 냉각 수요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술은 폭염과 냉방산업에서 살펴본 고효율 냉각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물 부족 시대의 경쟁력은 ‘새 물을 찾는 것’만이 아니다
댐과 지하수, 해수담수화처럼 새로운 물을 확보하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미 사용한 물을 다시 쓰는 것은 기존 담수자원에 대한 압력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세계은행의 최근 담수 보고서는 여러 지역에서 담수 감소가 나타나고 있으며 수요관리, 재이용, 저장과 더 나은 물 배분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래의 물산업은 더 많은 물을 끌어오는 산업과 동시에 같은 물을 더 여러 번 사용하는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무리
기후위기가 물산업에 던지는 질문은 ‘물을 어디서 더 가져올까?’에서 ‘이미 쓴 물을 어떻게 다시 쓸까?’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공장과 도시도 안정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물 재이용은 환경서비스를 넘어 산업 인프라와 공급망 회복력의 문제로 커지고 있습니다.
다음 〈기후가 만든 산업〉 ④에서는 폭염과 산불, 홍수 위험이 커지면서 성장하는 기후 데이터·재난예측 산업을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