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바꾼 식탁〉 ②

사과 하면 떠오르는 지역이 있습니다. 대구·경북과 충북, 그리고 최근에는 강원도의 고랭지와 내륙지역까지 사과 산지의 이미지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과 산지가 그대로 유지될까요? 농촌진흥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 분석은 사과처럼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과수의 재배환경이 장기적으로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핵심은 ‘당장 어느 지역에서 사과가 사라진다’는 단정이 아닙니다. 기온이 오르면 재배 적지가 움직이고, 농가는 품종과 재배법을 바꾸며, 지역의 특산품 지도까지 함께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과는 비교적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사과는 비교적 서늘한 환경에서 품질과 생육이 좋은 대표적인 호냉성 과수입니다.

문제는 여름의 평균기온만이 아닙니다. 고온이 지속되면 과실 착색과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겨울이 지나치게 따뜻해지면 나무의 휴면과 개화 시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봄에는 개화기 저온과 서리, 여름에는 폭염과 집중호우, 가을에는 태풍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과 한 알은 사실상 한 해의 기후를 통과해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사과 재배환경 변화 개념도
사과 재배에 유리한 서늘한 기후환경이 북부와 고지대로 이동할 수 있음을 표현한 개념 이미지입니다. 실제 행정구역별 예측 범위가 아닙니다. (자체 제작 이미지)

재배 적지는 고정된 지도가 아니다

농촌진흥청은 현재의 품종과 재배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조건에서 고배출 기후변화 시나리오인 SSP5-8.5를 적용해 사과 재배 가능지역의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온난화가 강하게 진행되는 시나리오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고품질 사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 빠르게 줄어들고, 2090년대에는 현재와 같은 재배시스템으로 국내 고품질 사과 재배 가능지가 없어지는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이 예측은 미래가 확정됐다는 뜻이 아니라 강한 온난화 아래에서 품종과 재배방식을 바꾸지 않을 경우의 위험을 보여주는 자료에 가깝습니다. 실제 품종과 기술, 재배지역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산지가 북쪽으로 움직이면 지역경제도 움직인다

재배 적지가 움직이는 일은 단순히 농가가 밭을 옮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과수산지는 저장고와 선별장, 유통망, 농자재 업체, 가공업체, 지역축제와 관광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합니다.

따라서 특정 작물의 주산지가 이동하면 농업뿐 아니라 지역 브랜드와 유통시설, 일자리까지 함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농업지도’를 넘어 ‘지역경제 지도’를 바꿀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날씨가 사과 생육과 상품성에 미치는 영향
봄서리·저온, 폭염과 수분 스트레스, 고온과 강한 햇빛, 집중호우·우박·태풍은 사과의 생육 단계와 상품성에 서로 다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체 제작 이미지)

가격은 생산량뿐 아니라 품질에도 반응한다

사과 가격은 단순히 몇 톤이 생산됐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크기와 당도, 색, 상품과 비상품 비율 같은 품질도 중요합니다.

폭염이나 강한 햇빛, 우박, 집중호우가 과실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면 전체 생산량이 크게 줄지 않아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상품과 가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농산물 가격을 이해하려면 생산량과 함께 품질, 저장성, 유통비용까지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해답은 ‘북상’ 하나가 아니라 품종과 기술이다

기후가 따뜻해진다고 모든 농가가 북쪽으로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적응기술입니다.

농촌진흥청은 고온에서도 착색이 비교적 우수하거나 착색 의존도가 낮은 품종, 고온 대응 재배법 등 새로운 재배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차광과 관수, 병해충 관리, 정밀한 기상정보, 품종 전환이 함께 진행된다면 기후변화의 충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미래의 사과산업은 ‘어디서 재배하느냐’와 ‘어떻게 재배하느냐’를 동시에 바꾸는 산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마무리

기후변화가 사과에 던지는 질문은 ‘사과가 사라질까?’가 아닙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어디서, 어떤 품종을, 어떤 방식으로 재배해야 할까?’입니다.

작물의 재배 적지가 움직이면 지역경제와 유통망, 소비자의 장바구니도 함께 움직입니다. 그래서 사과산지의 변화는 농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후가 우리 식탁을 바꾸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음 〈기후가 바꾼 식탁〉에서는 기후변화로 세계 가격이 크게 흔들리는 대표 식품인 커피와 코코아를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